당미역
한번씩 토요일날 월차를 쓰면
아~ 이게 정말 주5일의 삶이구나 합니다.
주말을 제대로 보내는 느낌.
주5일 직장인 분들 부러워요~
그때 그렇게 지하실에 들어가
밴드 음악을 알게 되었고..
사실 꾸준히 연습해 오면서도
나는 참 소질이 없구나 싶었다.
늘 지하실 맴버들의 버스킹을
따라 다니다가
처음으로 곡 하나를 하라고
제안 받았다.
선배들과 같이 하는게 아니라서
부담은 덜했다.
그때 있었던 그 도시의 번화가에서
무대가 차려져 있고
첫 드럼 연주를 하는데
이런!
역시 선배들이 여분의 드럼스틱을
챙기라는 이유가 있었다.
연주하는 도중 드럼 스틱하나가
버스킹을 보고 있는
관중석으로 총알 처럼 날아갔다.
그 찰나에 그게 날아가는게 보이더라
다행히 다친분은 없었는데...
무사히 버스킹 연주를 마쳤고..
그게 나의 첫 드럼 연주 였다.
가야 하는 곳... 직장.
그 곳에 참 챗바퀴 돌게 만드는 거
같은데도 한편으로는 벌이가 되기도 하는데..
이제는 좀 출근하고 퇴근하고에서 해방이 되고 싶어요
해방...
뒤늦으면 영원히 해방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세상에 없는 부모님에 관한 것.
나의 아버지는 정말 엄청 극중에 염제호 같은 성격 이었다.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는 툭하면 욱하는 스타일 이었다.
어머니께서도 많이 어려워 하셨는데 아마 그 성격 때문이었을거다.
아버지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아버지와는 오래전 부터 떨어져 살았다.
나와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야 아버지를 뵈어야 겠다는 생각에
수소문 끝에 찾아 뵈었는데 그래도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고
상이 부러져라 맛있는 점심을 내오셨다.
어릴적 내가 보아왔던 욱하는 성격 없이
별 말없이 따뜻하게 조용히 반겨 주셨다.
'아버지, 어머니 있는 곳에 가서 같이 살면 어때?'
라는 말에 아버지는 염치 없다는듯 손사레를 치셨다.
내가 아마 그때 끌고 내려 가길 작정했었더라면
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버지의 멱살을 끌고 서라도 어머니와 있던
그 곳으로 데려 갔었다면...
홀로 지내다 사고가 나서 돌아가시지 않았을 건데...
경조사가 있을때 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립다.
살아가면서 방향을 잃었을때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싶은데 듣지를 못한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을 잃어버린채
표류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