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9

본문 바로가기

당미역

2022.08
08
회원사진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카드놀이나 

남을 때리거나 

술을 먹거나 

당구를 칠 줄 알거나 

논다는 친구들이 하는 그런 일들을 

할 줄 몰랐다. 

 

무슨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그때 그날은 내가 일탈을 하고 싶었다. 

하염없이 시내를 걷고 걸었다. 

발걸음이 무겁고 지칠때 즈음, 

어느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쪽에서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멈추고 또 다시 들렸다. 

한참을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듣고 있다가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서 머뭇거리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담배냄새와 퀘퀘한 

지하의 냄새가 코를 자극 하였고, 

악기를 들고있는 이름모를 사람들 

상전처럼 여러 북속에 파뭍혀 있는 사람이 

'쟤는 누구야?' 라는 표정으로 가우뚱 거리며 

나를 보았다. 

 

그 정적 속에 뭐라 할말이 없어서.. 

"그냥 음악 소리가 들려서 들어 왔어요." 라고 말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어떤 멜로디를 서로 연주를 하는데 

라이브 콘서트에서나 볼 듯한 굉장하고 우렁찬 사운드였었다. 

 

한참을 쇼파에 앉아서 듣고 있는데 

연주가 멈췄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냥 저도 악기가 배우고 싶다고 했었다. 

 

제일 뒤에서 연주하는 악기가 뭐냐니까 

드럼 이라더라 

 

그래서 고2의 나는 

불현듯 들어간 지하실 밴드실에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내향적인 성격이 많이 

외향적으로 바뀌게 되었던 거 같다. 

 

인생에서 지우질 못한 친구들도 여기서 만났는데 

다들 지금은 뭘 하면서 살까?

2022.08
07
회원사진

초등학교때 부터 인가
기억하는 것만 하여도 15번정도

엄청나게 이사를 다녔던것 같다.

가까운 동네에서의 이사라면 모를까
강원도에서 목포, 포항, 창원 등등

내향적인 성격에 전학간 곳의
친구들과 쉽게 다가가지 못했고
겨우 어렵게 친구를 사귀게 되면
전학을 갔다.

그때 아버지의 직업은 전기공사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뭔가 많이 힘드셨을까

어느때는 전학을 간 학교에 하루 등교를 가고
다음날 이사를 간적도 있으니...

자연스레 잦은 이사로
친구들에 대한 마음을 많이 닫았다.

처음 몇번의 전학은 아픔으로 다가 왔는데
매번 반복하다보니
친구를 만들지 않게 되었고..

그저 그렇게 아무런 기척없이 떠나갔다.

어렸을때 부터 혼자에 길들여진 나는
여전히 지금도 두환이와 정훈이 같은
친구가 없다.

아무도..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로인해 홀로계신 어머니와
더 많은 곳을 이사를 다녔다.

그때 부터 였을까..

어머니는 내가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들을
어렸을때 부터 뜯었다 조립했다 했다고 한다.

나는 그게 좋았으니까
그냥 내가 버리지 않으면 떠나지 않는
유형의 제품이 좋았고 애착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언제든 만났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떠나니까...

그래서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된걸까..

사실 내 직업도 사람과 많이 소통을 해야 한다.
그냥 그저 소통 잘하는척 연기를 할 뿐이다. 

2022.08
06
회원사진

냉정과 열정사이의 무덤덤함을 깨는
카톡1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내용을 봤기 때문일수도 있고
경기도에 홀로 남겨진 것이
아직도 그와의 만남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 연락이 온다는 건
아직도 추앙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거다.

연락에 대한 약속을 했기에...

아픈 손가락 같은
그는 곁에 있는 내내
같이 있어도 늘 고민거리가 맴돌고
늘 혼자 인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지금도
내 세계관에 맴도는 그.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냉정과 열정사이.

그의 삶을 알기에
또 다시 시작한다는건
서로에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 

2022.08
05
회원사진

염미정과 꼭 같은 직원이 '우리도 해방일지 작성 해보는 건 어때요?'
라는 말에 나는 해방클럽이라는 단톡을 만들고
해방일지라는 노트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열정도 없고,
그동안 꾸준히 해왔던 일들을
모두 손에 놓았던 그때에

돌이켜 보면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았냐는 무심코 건넨
그말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을까..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되내어 보며
나에 대해 일지를 쓰게 되었다.

박해영 작가 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 드라마 덕에 내가 웹에서 해방클럽을 만들고
해방일지를 쓰고 나누게 되었다.

22년 7월 22일 회사내 해방클럽의
첫번째 모임이 있었고

나와 두환이와 정훈이의 저녁처럼
편하게 지내고픈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편안했을지...

늘 사람과 일을 하는 나의 해방클럽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길 바라면서... 

게시판 전체검색